지난 18일 종영한 SBS TV 드라마 '원티드'는 작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유명 배우 정혜인(김아중 분) 아들 납치극으로 출발한 '원티드'는 아동 학대와 불법 임상 시험, 모방 범죄 등 우리 사회 문제를 하나하나 파헤쳤다.

이 드라마의 최종 과녁은 올봄부터 온 나라를 분노케 한 가습기 살균제 사태, 즉 탐욕 때문에 재앙을 만든 자본 권력이었다.

'원티드'가 데뷔작이라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담하고 시의성 높은 문제의식을 보여준 한지완 작가를 22일 인터뷰했다.

한 작가는 연합뉴스에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루는 데 대한 부담은 없었다"면서 "다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게 오히려 상처를 주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걱정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 "고통받는 사람들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

한 작가가 '원티드'의 기본 얼개를 떠올린 것은 3년 전이었다.

스티븐 킹과 요 네스뵈, 미야베 미유키, 애거서 크리스티의 팬이며 1990년대 스릴러 영화들을 아낀다는 한 작가는 연쇄 살인범 관련 책을 읽던 중 피해자 아버지가 공개 방송을 진행하는 설정에 눈길이 닿았다.

이듬해 초고 집필을 시작한 한 작가는 세월호 침몰사고를 계기로 큰 심경 변화를 겪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엄연히 있는데도 누구도 책임을 지거나 용서를 빌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라고 본 그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한 작가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룬 자료는 거의 다 찾아봤을 정도로 원고 집필에 공을 들였다. 제작진과 배우들도 관련 내용을 알아볼 정도로 호응했다.

"다만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소재를 다루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경험이 각각 다르기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항상 인지하고 책임지려는 태도가 있어야 하고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게 오히려 상처를 주는 일이나 왜곡해 다루거나 민감한 문제에 대한 여론을 잘못된 방향으로 형성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걱정은 있었죠."

 

◇ "자극 재미있어 하면서 만드는 사람만 비판하면 안 돼"

"평소 TV나 인터넷을 보면서 심한 피로감을 느꼈어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산자와 소비자가 적나라하게 서로 부추기면서 잘못된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 같았죠."

'원티드'는 미디어를 향해서도 날을 세워 비판했다.

드라마는 유괴범 요구에 따라 리얼리티쇼 '정혜인의 원티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을 담아냈다.

미디어 영향력을 악용하면서 스스로 괴물이 된 유괴범 최준구(이문식)뿐 아니라 오로지 방송만 생각하는 PD 신동욱(엄태웅)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한 작가는 "신동욱은 올바른 가치관이나 인간에 대한 배려 없이 일 자체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과 지나친 자기 증명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면서 "그를 통해 미디어의 극단적인 추구가 만들어내는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에 반해 방송작가 연우신은 처음에는 신동욱의 '액셀'이었지만 나중에 '브레이크'가 되는 인물"이라면서 "공감 능력이 있는 연우신을 통해 시청자들이 신동욱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보는 사람'의 책임에 대해서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려고 애썼다.

"보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함으로써 만드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만들라고 요구할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극적인 콘텐츠를 재미있어 하면서 보고, 실제로 그것으로 수익을 내게 해 주면서 자극적인 방송을 만든다고 비판만 하지 말자는 거죠."

그는 미디어에 대한 비판의 연장 선상에서 인터넷 연예지 기자 이야기를 더 자세히 다루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 "김아중의 엄마 연기? 모성 부족 아니라 방법이 다른 것"

'원티드' 초반부에는 배우 정혜인으로 분한 김아중의 엄마 연기를 둘러싼 비판도 적지 않게 나왔다.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에게 우리가 기대할 법한 모습과 정혜인의 모습이 이질적이라는 지적이었다.

한 작가는 이에 대해 엄마들이 갖는 보편적인 감정은 있지만, 사람마다 성격과 기질과 경험이 다르지 않느냐는 이야기로 김아중 연기를 옹호했다.

그는 "7살에 연기를 시작해 그 나이까지 최고의 배우로 살아남은, 똑똑하고 냉정하고 의지가 강한 여자라면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일어나서 방송을 만드는 게 아들을 잃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중남미 소설들을 보면 자주 나오는 표현 중에 엄마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암사자처럼 싸웠다'는 구절이 있어요. 저는 '엄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혜인'이 중요하고, 모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 방법이 다르다고 봤어요."(연합) 정아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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