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가리켜 북핵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함께 일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방영된 CBS의 시사프로그램 '60분'과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의 협상을 꺼리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그러면서 "외교수장으로서 나의 일은 우리가 채널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을 북한이 알게 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지 귀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북한이 대화를 요청해오면 응하겠다는 더 확실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맞춰 방한했다가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대화를 하겠다"며 대북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발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미국이 무조건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대북압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틸러슨 장관도 "만일 그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진행 중인 압박작전을 계속하고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했다. 또 "그들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당근이 아니라 커다란 채찍을 사용하고 있으며, 북한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펜스 부통령은 전날 한 연설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 압박할 것"이라고 했다.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한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잔혹한 김정은 정권이 지구 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로 세계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가용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했다. 대화의 문턱을 더 낮추고 공을 북한에 넘겼을 뿐 북한이 비핵화하기 전까지 제재·압박을 유지하고 강화하겠다는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남북 정상회담 기대에 대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는 속담을 인용한 것도 현재의 북미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려면 무엇보다 북미대화의 여건이 조성돼야 하는데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자 개인 필명 논평에서 "할 일을 다 해놓고 가질 것을 다 가진 우리는 미국과의 대화에 목말라 하지 않으며 시간이 갈수록 바빠날(급해질)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라고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직전 북미접촉 가능성이 거론될 때 '미국에 대화를 구걸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같을 것'이라고 한 조영삼 북한 외무성 국장의 발언과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본격적인 대화를 앞둔 샅바 싸움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썬 간극을 좁혀 나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이제 엿새 남았다. 이후 패럴림픽이 이어지지만, 그때까지도 북미 대화 여건이 조성되지 않으면 한반도 안보 환경이 급격히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우리가 북미 사이에서 중재하며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다고 할 수는 없다. 정부는 올림픽 이후 남북대화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한다. 남북군사 당국 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 등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이어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남북대화 개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북한 측에 비핵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미국과의 대화에 나설 것을 지속해서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초청에 바로 응하지 않고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답한 것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북한도 미국이 확실한 대화 신호를 보낸 만큼 고집스럽게 버티기만 할 것은 아니다. 조선중앙통신은 19일 논평에서 "우리는 대화에도 전쟁에도 다 준비되어 있다"며 "온 세계가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되어 유독 미국만 모르고 있는가"라고 주장했다. 방점은 미국의 군사옵션 가능성을 비난하는 데 찍혀 있는 듯하지만 미국 측의 대화 신호에 대한 첫 반응일 수도 있다.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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