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킴벌리가 자사 대리점들과 짬짜미해 100억 원대 정부 입찰에서 납품권을 따낸 뒤 그 사실을 스스로 신고해 대리점에 처벌을 떠넘겼다고 한다. 사실상 담합을 주도하고도 자진 신고자에게 처벌을 면제해주는 공정거래법상 리니언시 제도를 이용해 대리점만 처벌받게 한 것이다. 리니언시는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담합 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만든 제도지만 이번 경우처럼 허점도 많다. 제도를 폐지하기 어려우면 악용될 소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2005년∼2014년 자사 23개 대리점과 담합해 135억 원 규모의 정부 입찰에 참가한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정부와 공공기관 14곳이 발주한 마스크와 종이타월 등 41건의 입찰에 참여하면서 응찰가격을 공유한 것이다. 사건을 심의한 공정위 소위원회는 지난달 12일 유한킴벌리 본사에 2억1천만 원, 23개 대리점에 총 3억9천4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 유한킴벌리의 임원과 실무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하라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하지만 유한킴벌리는 과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고, 고발 대상 임직원들이 조사받을 필요도 없다. 담합 사실을 공정위에 스스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가장 먼저 담합 사실을 신고한 기업에는 과징금과 검찰 고발이 100% 면제되고, 2순위 신고자도 과징금의 50%와 검찰 고발을 면제받는다.

담합은 시장경제를 교란하고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대표적 불공정거래 행위다. 국민의 혈세인 정부 예산을 축내고 소비자에겐 높은 가격으로 덤터기를 씌운다. 공정한 거래질서를 지키고 경쟁을 촉진해야 하는 공정위 입장에서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대상이다. 리니언시 제도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을 적발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일 수 있다. 실제로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기도 하다. 2016년 한 해 동안 공정위에 적발된 45건의 담합 사례 가운데 27건(60%)이 리니언시를 통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유한킴벌리 사례는 이 제도를 보완해야 할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대리점은 본사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워 담합에 끌려가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유한킴벌리 대리점들은 위법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고, 본사가 스스로 신고해 처벌을 피한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갑을 관계의 본사와 대리점이 담합했을 경우 본사는 리니언시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시장 지배적 위치에 있는 대기업이 담합했을 때 리니언시를 인정할 필요가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대기업이 일을 벌여놓고 자수하면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 간 중소기업만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공정위는 담합 적발의 효율성만 생각해선 안 된다. 차제에 리니언시 제도의 악용을 차단하고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는 개선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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