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연 기자] 인천시립극단(예술감독 강량원)이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창작극 개발 프로젝트의 첫 번째 연극을 선보인다.

인천시립극단은 4명의 극작가(이양구, 한현주, 김은성, 박상철)와 공동으로 서구의 근대가 들어온 통로 중 하나였던 우리지역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면서 함께 공연소재를 찾아왔다. 이번에 선 보일 <너의 후일은>을 시작으로 4개의 희곡들을 차례로 공연할 예정이다.

연극 <너의 후일은>은 역사적인 사건을 유쾌하고 서정적으로 재구성하여 풀어낸 이야기이다. 임오군란에서 실패를 경험한 퇴역군인 '재군‘이 고향인 인천에서 친구의 권유로 다시 한번 갑신정변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혼란한 시대를 온 몸으로 겪으며 고군분투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향한 패기와 열정을 잃지 않는 젊은이들이 모습을 고스란히 포착한다.

개항된 지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은 전형적인 어촌 마을에 불과한 제물포항에 인천세관이 들어서고 대불호텔, 근대적인 염전, 등대가 세워지는 모습이 흑백 사진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배우들의 화술과 몸짓으로 재현하는 여러 나라 외국인들과 조선인들의 모습은 마치 가무극처럼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100여 년 전 그때로 관객들을 이끌 것이다.

연극 <너의 후일은>은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지만 그것은 바로 가슴 벅찬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시대를 뜨겁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어느새 우리 시대를 돌아보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문화를 통하여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감과 동시에 미래의 모습까지 그려볼 인천시립극단의 창작극 개발 프로젝트 연극<너의 후일은>을 자신 있게 관객들에게 선보이고자 한다. 공연은 4월 28일(토)부터 5월 6일(일)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다. 

 

■ 작품소개

우리에게 무엇이 더 나은 세상으로 오는걸까?

갑신정변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유쾌하고 서정적인 이야기로 찾아온다. 임오군란에서 실패를 경험한 퇴역군인의 시선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젊은이들의 패기와 열정을 고스란히 포착한다. 개항된 지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은 전형적인 어촌 마을에 불과한 제물포항에 인천세관이 들어서고 대불호텔, 근대적인 염전, 등대가 세워지는 모습이 흑백 사진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배우들의 화술과 몸짓으로 재현하는 여러 나라 외국인들과 조선인들의 모습은 마치 가무극처럼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100여 년 전 그때로 우리를 인도한다. <너의 후일은>은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지만 그것은 바로 가슴 벅찬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시대를 뜨겁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어느새 우리 시대를 돌아보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지혜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 지역의 소재로 직접 제작되는 <인천의 연극 – 우리 연극>

인천시립극단이 오랫동안 준비한 창작극 개발 프로젝트 첫 번째 작품이다. 인천시립극단은 4명의 극작가(이양구, 한현주, 김은성, 박상철)와 공동으로 서구의 근대가 들어온 통로 중 하나였던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면서 공연소재를 찾아왔다. 이번에 선 보일 <너의 후일은>을 시작으로 4개의 희곡들을 차례로 공연할 예정이다.

천시립극단은 인천 시민들과 함께 만들고 나눔으로써 개인과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며, 인천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권을 신장시키고, 문화민주주의를 이룬다는 목표를 두고 인천을 주제로 하는 창작극을 개발하고자 노력해왔다. 이를 위해 지난 2017년도부터 공개강좌 및 작가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모습과는 다른 인천의 새로운 모습을 무대 위에 그려낼 것이다.

문화를 통하여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감과 동시에 미래의 모습까지 그려볼 프로젝트 연극<너의 후일은>을 자신있게 관객들에게 선보이고자 한다.

■ 줄거리

재군은 임오군란(1882)에 참여하였던 군인이다. 난이 평정된 이후 고향인 인천으로 내려와 배에서 내리는 승객들을 지게로 육지까지 실어다주거나 나무를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재군은 어느 날 양반가의 종으로 일본까지 건너가 하사관 교육까지 받고 돌아와 갑신정변에 참여하는 친구의 권유로 다시 한 번 정변에 참여하기로 한다. 그 무렵 재군은 인천에 잡화상을 열어 기반을 잡은 후 염전을 개발해 보려는 일본인 히로시의 제안으로 염전 개발 사업을 함께 해볼까 하는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김옥균 등 개화파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무력과 다케조에 일본 공사 등 일본군의 도움을 받아서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1884.12.4.)에서 정변을 일으킨뒤 실패하자 인천을 통해 일본으로 도망친다. 정변에 동참했던 재군은 창덕궁에서 청나라 군대가 쏜 총에 맞아 죽고 지게에 실려 고향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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