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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 칼럼] 범계 씨의 백년지계(百年之計)?

기사승인 2021.05.30  18: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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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일 논설위원

범계 씨.

직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의 공소장이 언론에 유출된 지도 십 수 일이 지났습니다. 범계 씨가 바로 유출자를 색출하라 추상같이 하명(下命)하셨는데 아직 까마귀소식입니다. 혹여 부하 직원이 명령을 잘라 먹은 건 아니겠지요.

직권 남용!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는 이렀습니다. 직무를 핑계 삼아 직무에서 벗어난 행위를 함부로 하여 공무의 공정을 잃음. 갑질의 외삼촌뻘쯤 되는 셈이죠.

이성윤, 이 분이 어찌 직권 남용 혐의로 기소가 됐는지는 잘 아시잖아요.

김학의 전 차관을 누군가 불법으로 출국 금지 시킨 사건을 수사하던 후배 검사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죠. 근데 김학의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지난 정권 때 대통령 박근혜의 애지중지와 권력의 비호를 등에 업고 나쁜 짓을 참 많이 하고도, 대놓고 법망을 무시하고 빠져나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절차적 정의를 운운하는 것은 범계 씨의 입장에서는 참 눈꼴사나운 일일 겁니다. 십이분 이해합니다. 41.1%의 국민들은 잘했다고 박수까지 칠 테지요. 나쁜 놈 때려잡는데 뭔 합법 불법 따지고 난리야 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이성윤이 직권 남용 혐의로 기소됐으면서도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가 확 됩니다. 외려 승진의 기운마저 감돈다 하지요.

범계 씨. 유출 혐의자가 100명에서 20명 내외로 추려졌다면서요. 빨리 잡아내라고 또다시 득달같은 불호령을 내려 주세요. 유출로 인해 애먼(?) 분들이 정신적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공소장 내용에 따르면, 예의 김학의 건으로 수원지검 안양지청의 수사를 받고 있던 검사 이규원이,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 이광철에게 청탁합니다. 두 분은 연수원 36기 동기라지요.

이광철은 민정수석 조국에게, 조국은 법무부 검찰국장 윤대진에게, 다시 윤대진은 안양지청장 이현철에게 줄줄이 부탁을 합니다(윤대진과 이현철은 연수원 25기 동기).

‘곧 유학을 가니깐’ 수사하지 말라고. 그럼요. 유학 가는 사람을 수사하면 안 되지요. 공부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안 되지요.

공소장 내용이 유출되면서 이 분들 명예에 엄청난 손상을 입었잖아요. 권력형 비리의 전형들이라고. 신(新)적폐라고. 사후에라도 구제가 되겠어요? 이 분들, 이미 실추된 이미지 어쩔 거냐구요.

과정에서 법무장관 박상기는 윤대진에게 이렇게 질책했다지요. “내가 시켜서 직원들이 한 일을 조사하면 나까지 조사하겠다는 것이냐”고.

구린 꼰대 같기도 하고 일진놀이 하는 고삐리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안 되지요. 법무장관인데. 될 법이나 한 말인가요.

하루빨리 유출자를 색출해서, 이규원, 이광철, 윤대진, 조국, 박상기 이 분들이 받은 정신적인 피해에 상응하는 죄값을 반드시 치르도록 해야 할 겁니다. 그렇잖아요.

범계 씨.

애초 수사의 도화선은 법무장관 박상기의 지시였다지요. 김학의 출국에 관해 조사하라는.

수원지검 안양지청의 검사 윤원일은 성실하게 지시를 따랐겠죠.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합니다. 김학의 출국이 잘못된 게 아니라 출국을 막은 것이 잘못됐다는 거죠. 출국 금지 공문서가 조작된, 불법 행위였다는 거지요.

요 대목에서 윤원일, 이 양반 사고 칩니다. 장관 지시의 의미가 뭔 줄 알면서. 김학의를 때려잡으라 했더니 김학의 잡는 놈들을 때려잡네요. 허 참, 이 양반 앞으로 사회생활 걱정되네요. 안 그래요 범계 씨. 지금 누구 세상인데? 어떤 세상인데? 내로남불 세상 아닙니까?

아 참. Naeronambul(내로남불)이 얼마전 뉴욕타임스(NYT)에 등장했죠. 제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Kimchi(김치), Bulgogi(불고기), Bibimbap(비빔밥) 이후로 한국어를 발음대로 영문 표기한 것을 접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것도 신조어를 NYT에 말이죠. 문화 선양(宣揚)의 측면에서 기생충, BTS, 윤여정의 쾌거에 버금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시 이야기가 옆길로 샜네요. 아무튼 윤원일은 세상 쉬운 길 놔두고 어려운 길 갑니다. 그냥 덮어버리면 윗분 들이 상도 주고 칭찬도 무지하게 할 텐데 형사소송법 195조를 따릅니다. 검사는 범죄 혐의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수사한다는(현재는 196조로 바뀌었죠). 참 답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에! 아니 사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만약에 말이죠. 공소장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면 이거 큰일입니다.

청와대 민정수석과 행정관, 법무장관과 검찰국장, 지청장. 어마어마한 직책들입니다. 가진 힘도 어마어마하겠죠. 일반인은 감히 쳐다나 보겠습니까.

그런데 이 분들이 짬짜미해서, 불법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수사를 불순한 힘으로 막았다면 어휴 큰일입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지금 약간의 역풍이 감지되는데 부디...사실이 아니기를 기원해 봅니다.

권력이 작당해서 진실을 호도(糊塗)하고 왜곡, 은폐하다 들통난 경우에 호되게 낭패를 당한 기억은 많죠. 비약해서 꼽아 보자면 ‘탁 했더니 억 하더라’는 박종철 사건이 떠오르네요. 범계 씨 말마따나 이 둘을 평면 비교하는 것은 좀 그렇긴 하지만.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도 있지요. 암요.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범계 씨.

따지고 보면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일이 이렇게 난장(亂場)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큰 미꾸라지 작은 미꾸라지 가릴 거 없이 범계라인으로 교체하는 일이 시대적 요청(?)이 되었습니다. 해서 추진하고자 하는 검찰 조직 개편은 참으로 안성맞춤입니다. 어찌 감히 일개 검사가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의 허가 없이 수사를 진행한다 말입니까? 좀 늦은 감이 있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맛이 있지만 말이죠.

그래도 계속될지 모르는 ‘우덜만의 짬짜미’를 위해서는, 모양이 좀 빠지더라도 조직 개편 밀어붙여야지요. 앞으로의 득실을 따져보면 이문(利文)이 남는 장사이니까요.

범계 씨. 그런데 말이죠.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혹여 패배한다면 ‘죽 쒀서 개 준다’는 사실 꼭 명심하셔야 합니다. 비단 검찰 조직 개편뿐이 아니죠. 공수처가 더 큰 문제입니다.

내년 대선에서 이겨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이, 범계표(標) 검찰 조직이나 공수처는 집권 세력을 위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원점으로 돌리겠다 할 리 만무하잖아요. 그러면 범계 씨를 비롯해서 범계 씨 형님들, 친구들 그리고 후배님들 모두 대략난감 아닙니까? 그러니까 다음 대선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합니다. 김대업이든 드루킹이든 무조건 이기면 장땡이지요.

시방 백성들이 ‘직일놈들’ 하면서 아우성이지만, 누구 말마따나 백 년 동안 정권을 운영하다보면 그나마 좀 나아지지 않겠어요. 모쪼록 기대해 보겠습니다.

황정일 논설위원 hemo@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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